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서 코난 도일 (문단 편집) == 셜록 홈즈의 등장과 퇴장 == 코난 도일의 [[셜록 홈즈 시리즈]] 첫 번째 장편이었던 [[주홍색 연구]]는 1887년 11월에 비튼의 크리스마스 연감이라는 잡지에 실렸는데 원고료로 도일이 받은 돈은 25파운드밖에 되지 않았다. 그리고 도일은 1890년 2월에 [[미국]]의 잡지인 리핀코트 월간지의 청탁을 받고 두 번째 장편인 [[네 개의 서명]]을 게재한다. 이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인기를 얻었지만 [[추리 소설]] 역사상 [[셜록 홈즈 시리즈]]가 지금과 같은 인기와 위상을 얻게 된 것은 1891년에 창간하여 1950년까지 발행되었던 [[영국]]의 월간지 [[스트랜드 매거진]]의 편집장 헐버트 그린호프 스미스(1855~1935)의 권유로 같은 해 7월부터 해당 잡지에서 연재하기 시작했던 단편 12개를 정리하여 다음 해인 1892년에 출간한 첫 번째 단편 모음집인 [[셜록 홈즈의 모험]] 때문이었다. 사실 1891년 [[런던]]으로 이사하여 안과를 운영하던 도일은 이전까지 진료하는 환자가 별로 없는 의사였지만 단숨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유명 작가로 자리잡았으며 본업이었던 안과 의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다. 코난 도일은 1894년 두 번째 단편 모음집인 [[셜록 홈즈의 회상록]]을 출간하면서 [[마지막 사건]]이라는 이야기를 통하여 [[셜록 홈즈]]의 숙적으로 설정된 [[제임스 모리어티]] 교수를 등장시킨 뒤 모리어티의 습격을 받은 홈즈가 [[스위스]]의 라이헨바흐 폭포 아래로 모리어티와 함께 추락하여 죽음에 이르렀다는 결말을 제시하며 마무리한다. 도일이 셜록 홈즈를 죽인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. 도일은 애초에 셜록 홈즈보다는 역사 소설 등 진지한 소설로 인정을 받고 싶었는데 대중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셜록 홈즈뿐이었다. 물론 도일이 쓴 [[역사]] 소설 중에서도 그럭저럭 팔린 책은 있었으나 셜록 홈즈의 인기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. 게다가 추리 소설가를 꿈꾸지 않았던 도일이 계속해서 새 플롯을 짜내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다. 결코 좋아서 쓴 것이 아닐뿐더러 단단히 질려버린 코난 도일은 아예 [[셜록 홈즈]]를 죽이기로 결정한다.[* 코난 도일은 [[셜록 홈즈]]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. 아들이 [[셜록 홈즈]]에 대해 말하자 듣기도 싫다며 성을 냈을 정도.] 결국 1894년 <[[마지막 사건]]>[* 코난 도일은 [[스위스]] 여행을 가서 라이헨바흐 폭포를 보고 홈즈의 무덤을 이곳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. 그리고 그렇게 만든다.]을 통해 [[셜록 홈즈 시리즈]]를 종결시켜 많은 독자들로부터 비난과 아쉬움을 샀지만, 1899년 '''[[얼룩 띠의 비밀]]'''을 기반으로 한 연극이 [[미국]]에서 먼저 상영되고 1902년에는 [[영국]]에서도 상영됨으로써 코난 도일의 부와 명성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.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. 이 무렵 그의 첫 부인 루이자가 당시로서는 [[불치병]]이었던 [[폐결핵]]에 걸린다.[* 결국 루이자는 6년 뒤에 사망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